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 혁명의 시대/등장인물 (문단 편집) === 주인공 및 가족 === * '''[[이선(조선, 혁명의 시대)|이선 (이선우)]]''' >기묘년 음력 12월, 서력 1880년 1월. 대조선국이 개국한 지 488년, 금상의 치세는 16년째가 되는 해였다. >조선은 국가의 활력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으며, 점증하는 대내외의 압력으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제국주의 시대로, 동방의 고요한 나라 조선을 향한 열강의 탐욕스러운 시선이 모여들고 있었다. >전례 없는, 미증유의 위기였다. >하지만 위기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이는 드물었으며,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국제 정세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 이는 더욱 드물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과감하게 개혁의 칼날을 들이밀며 흔들림 없이 국가를 이끌어나갈 지도자를 필요로 했다. >'''시대의 부름에 정확히 응답할 지도자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한 시기였다.''' 1868년 5월 31일생. 주인공으로 원래는 대한민국의 1988년생(32세)[* 연대 당시는 2017년이었다.] 근대외교사 전공 역사학도 이선우였으나, 원래 일하던 곳에서 만연한 부조리에 시달리다 뛰쳐나와 먹고 살기 위해 역사 관광 가이드 일을 하던 중 고종의 첫째 아들 완화군 이선의 무덤 앞을 지날 때 단명한 완화군이 불쌍하다는 관광객의 말에 자조적인 말투로 '그래도 얘는 자기나라 망하는 꼴 안 보고 죽었으니 그나마 행복한 거다'는 말을 했다가 나도 내 나라를 위해 무언가 하고 싶었다는 [[완화군]]의 혼령에 이끌려 [[완화군]]의 몸에 빙의하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이선(조선, 혁명의 시대)]]'''를 참고. * '''황후 → 태후 김아영''' 1878년생. 광산 김씨 가문의 [[http://www.kwangsankim.or.kr/sub0616.html|김재정]]의 여식으로 흥선대원군이 정해준 이선의 정혼녀. 원래 역사에서는 [[이준용]]의 두 번째 부인이다.[[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alternative_history&no=920898|#]][* 첫 부인인 남양 홍씨와 1894년에 사별하고 재혼했는데, 작중에서 이준용의 가족사는 거의 묘사되지 않았다.] 임오군란 후 중전 민씨가 폐위되면서 광산 김씨 가문의 여식을 중전으로 간택했는데, 그녀가 잘 처신하는 것을 본 대원군이 만족해서 손자에게도 같은 가문에 먼 친척인 그녀를 골랐다. 대원군이 손자가 서양물을 먹어서 서양여자를 좋아한다고 짐작하고 서양적인 느낌이 나는 규수를 골랐다는데, 그 덕에 21세기 사람인 이선도 보고 미녀라고 할 정도. 가치관에 있어서도 그 시대 사대부 집안 여성치고는 매우 진취적이게도 사진을 찍었고, 신식 교육을 받았다. 이선이 중전에게 문안 인사를 올릴 때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녀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한 이선이 살짝 떠밀자 몰래 유학생으로 지원할 정도로 당찬 여성이기도 하다.[* 이선은 만약 본인과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조선 최초의 여성의사 같은 여성 최초의 무언가가 되었을거라면서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니콜라이 2세]] 즉위 축하 사절단으로 함께 갔다가 돌아왔고,[* 대원군은 손자 이선을 아껴서 그의 취향까지 고려해서 서양 느낌의 그녀를 골랐음에도 유학을 간다니 배신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이며, 즉위식까지만 보고 데려오지 않으면 다음엔 후보도 안 알려주고 간택하겠다며 경고한다. 그래도 조선 역사상 최초로 왕족과 결혼할 여인이 결혼 전에 그 왕족과 몇 달을 같이 지냈다는 전례를 만들기는 했다.] 이후 결혼하여 황후가 된다. 하지만 혼인 후에는 중전처럼 신첩(臣妾)이라고 칭하며 철저하게 유교 사상에 충실한 아내 역할을 하며, 이선이 사랑하진 않지만 아내로서 존중하고 가장으로서 충실한 것에만 만족해하며 미래인으로서 고뇌를 삭이며 힘겹게 국정을 운영해가는 이선에게는 위안처가 되어주지 못한다. 러시아를 다녀오면서 마르가리타를 자매처럼 여길 정도로 친해지는데, 처음엔 이선에게 후궁을 들일 것을 제안했다가[* 아영은 황제인 이선이 첩을 안들인걸 이상하게 생각했다.] 다음엔 그녀를 후궁으로 들일 것을 제안하고, 결국 이선과 그녀가 선을 넘자 진심으로 기뻐한다.[* 근대교육을 받아 신여성을 꿈꿀 정도로 진취적이었으나,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자 전근대적인 인식으로 용인해버린다. 그러면서도 이선이 입헌군주제의 황후로서 외부활동을 하라고 요구하면 군말없이 따르는 등 남편이 근대와 전근대 사이를 오갈 때마다 그저 따라가는 평면적인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신교육을 받긴 했지만 원래 전통적인 유학자 명문가 집안 출신인 데다가 민자영의 폐출 이후 그녀의 먼 친척 고모인 황태후에 이어 그녀까지 두 명 연속으로 황후를 배출하게 되자 집안에서 경사스러워하면서도 처신을 조심하고 그녀에게도 민자영을 반면교사삼아야 한다고 단단히 당부한 것이 캐릭터성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3부에서는 심리적인 문제를 겪던 이진에게 신경을 많이 써줬다는 것이 드러났으며, 국내 정치에 언급을 삼갔던 것과 달리 이진을 걱정해서 박영효에게 자비를 베풀어줄 것을 청한다. 그리고 이진이 청국과의 국혼을 마뜩치 않아한다는 것을 남편에게 귀띔해서, 소원대로 타티야나 공주와 결혼할 수 있게 도왔다. * '''황태자 → 태시제 이진''' 1897년(광무 원년) 11월 20일생. 이선과 황후 김아영 사이의 장남이자 황태자로, 대원군이 지어준 아명은 황길. 16세의 나이로 황태자에 책봉되었다. 2부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자신을 장손이라고 아끼는 태상황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만 무능한데다가 청에 나라를 팔아먹을 뻔한 태상황을 내심 경멸하고 있으며, 로마노프 왕가 300주년 기념행사에서 완벽하게 매료된 모습을 보여서 전제군주가 되어 대한제국을 위기에 빠트릴 것 같은 모습으로 독자들의 비호감을 샀으나... 사실은 철인에 가까운 아버지에게 애정을 갈구하나 정무에 바빠서 자신에게 무관심하고 황후가 아닌 마르가리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모습, [[자학|위대한 아버지의 능력에 영원히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자괴감]]에 고통스러워하는 가련한 소년이었다. 주변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명석해서 이선이 자신이 입헌군주가 되길 바란다는 것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는데, 이를 [[자기혐오|아버지가 자신을 마뜩치 않게 생각해서]]가 아니겠냐고 생각하는 내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결국 목표를 포기하고 아버지의 의지대로 입헌군주가 되겠다며 체념한다. 러시아에서 자신의 고민을 숙부인 영친왕 이영에게 조금은 드러내는데, 이를 이선이 보고 받고 3부 시점부터는 아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결국 입헌군주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하지만 아버지의 취미까지 따라하며 여전히 그만큼 훌륭한 군주가 된다는 목표를 버리진 않았다. 이선이 파리 강화 회의에 참석하기로 하면서 대리청정을 맡았는데, 경륜이 부족해서 박영효를 위시한 보수화된 개화당 원훈들의 휘둘리긴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무난하게 내정을 이끌었으며, 원산 학살사건에 대해서도 공식 보고를 믿지 않고 별도로 조사를 해서 군주로서 무능하진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후 후계자 교육을 시키겠다는 이선의 의도로 박영효 일파 숙청 이후에도 계속 대리청정을 하게 된다. 여전히 입헌군주제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만 내치만 담당하고 내각에 상당수 일임했음에도 엄청난 양의 업무에 시달리면서 좀 더 전향적인 태도로 변했고, 이선과 더 많이 소통하면서 마음에 여유가 생겼는지 경원시하던 이안도 자신의 숙부들처럼 역할을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하며 대화를 시도하는 나아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황후의 조력에 힘입어 타티야나 공주에게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이선에게 고백했고, 국혼을 맺는다. 처음에는 타티야나 공주와의 결혼이 막상 성사되자 부담스러워 했지만 서로를 맞춰가면서 사랑이 싹트고 딸을 낳는다. 이선의 영향을 받아 남녀 상관없이 자식은 모두 사랑해야 한다는 진보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게 밝혀진다. 진보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본인도 가정적인 면에서는 당시 기준으로 매우 진보적이며 미신을 믿는 아내랑 달리 미신도 안 믿는다. 아내랑 유럽순방을 하다가 을축년 홍수로 건강이 안 좋아진 이선이 선위하자 '''조선의 28대 군주, 대한제국의 2대 황제인 [[태시|태시제]]'''가 된다. * '''이나 ''' 1923년(광무 27년)생. 황태자비 '''[[타티야나 니콜라예브나 여대공|타티야나]]'''와 사이에서 난 딸로 어머니 타티아나의 한자 이름 탑계양나(塔季揚娜)를 따와서 이나라고 이름 지었다. 타티야나는 아들을 대신 딸을 낳아서 미안하다고 하지만[* 러시아 황실이 딸만 낳아서 러시아 황실로 받은 압박을 알고 있어서다.] 진보적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이진은 딸이면 어떻고 아들이면 어떻냐고 별 신경 쓰지 않는다. * '''이연수''' 1926년(태시 원년)생. 황태자비 '''[[타티야나 니콜라예브나 여대공|타티야나]]'''와 사이에서 난 아들로 이진과 타티야나가 세계여행 중에 가진 아이로, 연수라는 이름은 아명이다. 1926년 시점에서 니콜라이 2세와 이선의 유일한 손자이며 로마ㅡ유라시아 천명을 계승할 아이로 왕실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다. * '''예경공주 이희''' 1899년(광무 3년)생. 이선의 장녀이자 황후 김아영 사이에서 낳은 둘째. 황태자 이진과는 현실남매 같은 사이로, 그가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혈육. 이안이 대련에서 [[아나스타시야 니콜라예브나 여대공|아나스타샤 공주]]와 [[마리야 니콜라예브나 여대공|마리야 공주]]의 자신에 대한 애정을 알게 된 뒤 조언을 구했을 때 [[우정|최대한 친절을 베풀되, 오해를 사거나 구설수에 오를 일을 저지르지 말라]]는 조언을 해준다. 이후 김현사와 이진의 결혼이 파토난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에 그의 오빠인 김헌원과 결혼하고 김현사를 챙겨준다. * '''예친왕 이은''' 1906년(광무 10년)생. 이선의 삼남이자 황후 김아영 사이에서 낳은 셋째이자 막내아들. 결혼식날에 군복을 입고 등장하는데 사관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언급된다. 나중에 밝혀지기를 해군 사관학교를 다니고 있던것으로 나오며 육군에 집중된 군의 형평성을 위해 해군사관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물론 평생 군에 남을 생각은 아니고 영국 왕실처럼 해군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고 이선 역시 지지한다. * '''이금''' 1911년(광무 15년)생[* 1923년에 열두살이라고 나온다.]. 이선의 막내딸. 김아영의 막내딸. 그 나이 아이답게 놀다가 회의중에 집무실에 들어와서 국왕과 대신들의 귀여움을 받는다. 자식중에는 이선에게 자주 안기기 때문에 이선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자식이다. * '''[[마르가리타 얀코프스카]]''' 1868년 11월 29일생. [[폴란드]] 독립 결사에 소속된 [[금발]]의 여성 의사. 이선의 지인인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0701100062|미하일 얀코프스키]]의 친척으로 매우 진보적인 인물이라 여자임에도 의사의 길을 선택하고 사회주의와 폴란드 독립 운동에 투신했다. 그러나 러시아 경찰에 체포되어 시베리아 형무소에서 죽거나 강간당할 고비에 처하나 이선의 도움으로 한국에 가게 되고 이선과 사랑이 싹트게 된다.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마르가리타 얀코프스카)] * '''정친왕 이안 (얀 리)''' 1902년(광무 6년) 6월 10일생. 이선과 마르가리타의 장남으로 서자. 폴란드 독립운동가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폴란드에 대한 애정과 러시아 제국, 그리고 차르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대한황실 내에서 서자이나 이선의 차남이라는 점과 폴란드계 혼혈이라는 이유로 눈치를 받고 있으며, 황실 종친과 고위 공무직 자제들을 대상으로 한 광무학교에 입학했을 때 혼혈이라는 이유로 [[은따]]를 당한다. 그래서인지 고독과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 된다.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있어 학년 수석을 도맡으며 수석 졸업을 하게 된다. 냉소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어 수석 졸업이라는 소식을 듣고 친왕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봐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황제 직계를 제외한 황실 종친들 중에서는 [[동병상련]]의 처지로 이안에게 공감하는 [[의친왕|의친왕 이강]]과 영친왕 이영만이 이안을 좋게 봐주고 있다고 한다. 1918년, 아버지 이선의 명을 받들어 [[이르쿠츠크]]에 유배된 니콜라이 2세 일가 구출대의 대장을 맡게 되고,[* 러시아 민주주의 연방 공화국이 대한제국과의 합의로 니콜라이 2세 일가의 망명을 묵인하기로 했는데, 이선은 자식들 뿐만 아니라 황제와 황후 부부도 구출하라고 명령했다.] 이후 니콜라이 2세가 조국에서 운명을 같이 하기로 결심하고 황후도 남편의 곁에 남으면서 이안은 니콜라이 2세의 5자녀을 청국령 [[다롄시|대련]]으로 피난시킨다. 이 과정에서 공을 세워 알릭세이에게 [[사도 성 안드레이훈장]]을 수여받는다. 공주들을 구출한 후 대련에서 [[https://ko.wikipedia.org/wiki/OTMA|OTMAA]] 남매들과 생활 중이며 [[아나스타시야 니콜라예브나 여대공|아나스타샤 공주]]와 [[마리야 니콜라예브나 여대공|마리야 공주]]의 짝사랑 대상이다.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황태자|알렉세이 대공]]에게 그가 죽으면[* 당대 혈우병 환자들이 20대까지 사는 경우가 드물어 삶이 많이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를 대신해 그의 누이들이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보호해달라고 부탁받는다. 이후 대한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보다는 더 넓은 세상을 보고자 유럽 순방을 나서나 그곳에서 벌어지는 [[파시즘]]의 발흥과 혼란을 보고 충격을 먹는다.영국에서 머물며 공부하면서 수많은 영국여성들의 구애를 받으나[* 마리아의 결혼식으로 한국 황제가 부자라는 소문이 퍼져서 한몫잡아보려는 몰락 귀족, 신분 상승을 꿈꾸는 부르주아 영애들이 많았다.] 이를 못마땅하게 본 인종주의자들의 표적이 된다.데일리 메일의 오리엔탈 스캔들이 터지자 기자들의 질문공세를 받고 이것이 음모라는 걸 알아낸 이안은 스승인 [[케인스]]와 접촉한다. 여담으로 첫 짝사랑 대상은 현재 그의 숙모인 영친왕비 아나스타샤 안드레예브나 브론스카야[* 러일전쟁 당시 극동군 참모였던 안드레이 브론스키의 딸]였다고 한다. 상당히 미남인지 러시아 공주들에게도 인기 있을 뿐만 아니라 폴란드에서는 무도회에서 폴란드 소녀들에게 열정적인 구애를 받았으며[* 한국 황제와 마르가리타 얀코프스카에 대한 호감도와 소설속에서 나온 백마탄 이국적인 왕자님 로맨스도 한몫했다.] 인종차별주의자인 [[에드워드 8세]]나 미남으로 이름난 [[루이 마운트배튼]]도 잘생겼다고 인정한다. * '''예성공주 이라 (이리나 리)''' 1905년(광무 9년) 생. 이선과 마르가리타의 둘째 자식이자 서녀. 3부 시점에서 한동안 언급만 되고 등장이 없다가 이안을 따라서 유럽에 가고 싶어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한국과 서양의 미모를 다 가지고 있는 [[혼혈]] 미인으로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로마노프|알렉세이 대공]]과 [[선통제]]의 짝사랑을 받고 있다.[* 본인도 알고 있지만 보수적인 청나라 왕실에서 살기는 싫고 알릭세이 역시 얼마 못 가 죽을 거란 현실과 [[겹사돈]]을 꺼려서 결혼을 거부한다.] 이선의 사랑을 많이 받는 자식이지만 혼혈 여성이라는 특징 때문에 타티야나나 이서아와 가깝게 지낸다고 한다. 유럽인 다운 외모덕에 유럽에서도 여러 유럽 남성들의 구애를 받지만 에드워드의 오리엔탈 스캔들 이후로는 줄었다고 한다. 세계를 여행하면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여성이자 황녀인 [[엘리자베트 마리]]를 보고 감명받아 자신도 독립적인 삶을 살기로 결정하고 어머니 마르가리타처럼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되기로 결정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